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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저리 이야기

아자s 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 저* *
  • 조회 : 95
  • 등록일 : 2026-06-14
KakaoTalk_20260612_112437875.jpg ( 3,873 kb)

졸업을 앞둔 17.5기 최영범이 조금 일찍 세저리를 떠나게 됐습니다.

615일부터 <연합뉴스TV> 수습기자로 근무하기 위해서입니다.

 

언젠가는 그리 될 줄 알았지만, 결국 그리 되고 만 최영범은 다정하고도 야무진 사람입니다. 세저리에서 그와 함께 생활한 누구라도 영범의 생글생글 웃는 얼굴과 세상 다정한 말투를 기억할 것입니다. ‘교회 오빠처럼 훈훈한 최영범은, 그러나 사실은 아주 단호하고 끈기 있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발제회의를 할 때면, 왜 어떤 아이템은 안 되는지 여전히 차분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조목조목 근거를 들어 따지는 그 앞에서 부서 지도교수인 저조차 때로 서늘함과 야속함을 느꼈으니까요.


그가 <단비뉴스>에 리포팅한 기사들도 좋지만, <세저리이야기>로 그를 만나게 될 독자들이라면 영범이 나레이션한 <104km, 태백선 이야기>를 보시기를 권합니다. 그의 목소리를 듣고 있으면 따뜻하고도 단단한 무언가가 마음 속에 차오릅니다.


세저리에서 부드럽고도 단호했던 최영범 기자가 언젠가는 시청자들에게 세상이 무너져도 저 사람이 뉴스를 진행하는 한 괜찮겠지라는 신뢰를 갖게 하는 앵커로 카메라 앞에 설 날을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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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멍때리기를 잘합니다. 세저리 첫날 제쌤께서 특기를 물으셨을 때도, 흘러가는 구름과 흔들리는 나무를 가만히 바라보는 게 좋다고 답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특기라고 하기엔 조금 민망하지만, 어쨌든 저에게는 꽤나 중요한 시간이었습니다.


(제베리아)


그렇게 좋아하던 멍때리기도 세저리에 들어온 지 일주일만에 사치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입학과 동시에 취재기자가 됐고, 몰아치는 과제와 아이템 회의를 대비해야 했습니다. 자연스레 취재 욕심도 생겼습니다. 첫 학기에는 어떻게든 기사를 많이 써보자는 목표를 세웠습니다.

아침 730분에 일어나 학생식당에서 밥을 먹었습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포장해 문화관으로 출근했습니다. 수다도 떨고 쪽잠도 잤지만, 주로 취재보도론과 청년부 아이템 발제거리를 찾았습니다. 해가 지고 달이 떠서야 비룡학사로 돌아갔습니다.

 

돌이켜보면 처음에는 모든 게 낯설었습니다. 적지 않은 나이에 세저리에 들어왔고, 오랫동안 기자를 꿈꿔 온 선배들을 보며 괜히 조바심도 났습니다. (지금은 모두 취업한) 선배들에게 무턱대고 이것저것 물었습니다. 인터뷰 요청 메일은 어떻게 쓰는지, 취재 아이템은 어디서 얻는지, 인터뷰 녹음 전에 동의를 구해야 하는지. 귀찮을법한 질문인데도, 선배들은 늘 친절하게 알려줬습니다.


(청년부 회식)


청년부에서 처음 통과한 아이템은 고립은둔청년 실태조사 스트레이트였습니다. 부서 회의에 소제목도 달지 않은 초고를 들고 갔다가 호되게 깨졌던 기억이 납니다. 회의에 가져간 비공식 원고까지 합치면 10고 가까이 수정했던 것 같습니다.

출고 날도 생생합니다. 아침과 점심을 거른 채 문화관 407호 창가 자리에 앉아 원고를 고쳤습니다. 안쌤 전화를 받고 수정하고, 다시 전화를 받고 수정했습니다. 그날은 기사 한 편 내는 게 이렇게 어려운 일이구나 싶었습니다.

취보론 시간에 안쌤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세상에서 바꿀 수 있는 건 없다. 그나마 취향과 태도는 바꿀 수 있다.” 그 말을 세저리에서의 태도에 대한 이야기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날 할 수 있는 일을 해내는 데 집중하기로 했습니다.

 

2학기 차에는 청년부장도 맡고, 3학기부터는 팩트체크부에서 활동했습니다. 진술문을 검증하고 취재한 내용을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과정이 낯설면서도 재밌었습니다. 물론 늘 즐겁기만 했던 건 아닙니다. 마감은 다가오는데 글은 안 써지고, 취재원은 전화 거는 족족 거절하고. 글감옥에서 소리를 지르기도 하고 방에서 희우 몰래 눈물 흘리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부서 회의는 늘 기다려졌습니다. 각자 아이템을 가져오면 왜 이 기사가 필요한지, 무엇이 부족한지 이야기하는 시간이 좋았습니다. 팩트체크부는 회의를 마치고 다같이 점심을 먹는데, 회의 때의 긴장감이 식사 자리에서 서서히 풀리는 것도 재밌었습니다.


(팩트체크부 회식) 


3학기부터는 언론사 지원도 시작했습니다. 결과는 썩 좋지 않았습니다. 원서를 내고 필기시험을 보러 가면 떨어지기 일쑤였습니다. 그래서 논계반합스에 들어갔습니다. 단비뉴스 취재와 수업 과제, 시험 준비를 하면서 매주 글을 써내는 게 쉽지 않았습니다. 비록 완성도 있는 글을 써내진 못해도, 필기시험 전에 관련 내용을 보고 들어갈 수 있도록 따로 논제를 정리했습니다. 네이버 카페를 만들어 이슈별 찬반 논거를 정리하고, 괜찮은 칼럼을 발견하면 내용을 요약했습니다. 그렇게 모아둔 내용들이 실제 시험에서 꽤 도움이 됐습니다.

4학기쯤 되니 필기시험은 조금씩 통과하기 시작했습니다. 왜 달라졌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세저리에서 꾸준히 취재하며, 논술 스터디 2개와 리포팅 스터디, 신문 스터디, 기상 인증 스터디, 방송 모니터링 스터디를 하며 그날 해야 할 일을 차곡차곡 쌓아갔습니다.


(가왕전도 나감. 신기하게도 셋 다 방송기자 됨.)


운이 좋게도, 이쯤부터는 필기시험에 통과하면 최종면접까지 갈 수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세 번의 최종면접을 봤는데, 갈 때마다 입사라는 건 참 예측하기 어렵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어떤 면접에서는 너무 긴장해 1분 자기소개도 끝맺지 못했고, 어떤 면접에서는 현안 질문만 받고 나오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연달아 최종면접에 떨어지니,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결과에 연연하기보다, 면접장에 가서 제가 준비한 만큼 보여주자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마지막 면접도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세저리에서 참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시름시름 앓을 땐 상비약을 종류별로 나눠주고, 입사 전형 준비로 바쁠 땐 대신 취재를 나가주기도 했습니다. 면접을 앞두고는 예상 질문과 답변을 함께 고민하기도 했습니다.


(동기 회식)

(입학 첫 날 찍은 스티커 사진.)

(마지막 학기 앞두고 찍은 스티커 사진.)

 

돌이켜보면 가장 큰 힘이 된 건 동기들이었습니다. 각자 취재와 과제에 치이면서도 서로 무슨 일이 있는지 묻고, 결과가 좋지 않은 날에는 별일 아니라는 듯 소맥을 마셨습니다. 밤새 영화 와 사랑을 논하다가 별구경한 적도 있고요. 힘든 일도 결국 웃으며 넘길 수 있었던 건 그 시간들 덕분이었던 것 같습니다.


(명대 노을 맛집.)

 

언론사 합격 소식을 받고, 출근 전인 지금이 가장 행복한 시기라는 말을 가장 많이 들었습니다. 사실 아직은 기자의 바쁜 일상이 실감이 안 납니다. 문화관에 출근하던 생활도 끝났고, 더 이상 문화관에서 원고를 고칠 일도 없습니다. 세저리에 들어오고 멍때리는 시간은 줄었지만, 가끔 창밖의 나무를 바라보는 습관은 남았습니다. 문화관 창밖 풍경이 그리우면 다시 제천에 들르겠습니다. 모두 아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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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아이콘이미지  댓글수 1
naver -   2026-06-14 23:00:23
다정했던 당신을 절대 잊지 모태.... 돌아와요 영범.... (아니 돌아오지마)
내일 출근 파이팅! 그동안 아자쓰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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